요즘은 AI를 빼놓고 세상을 이야기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기업들은 AI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보고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시장을 먼저 선점하기 위해 사실상 사활을 걸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로운 기술 시장에서는 한번 격차가 벌어지면 후발주자가 선발주자를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AI 기술 역시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그런데 가끔 들려오는 소식들을 보면 한편으로는 걱정이 된다.
AI가 보안 취약점을 찾아 공격에 활용될 수 있다는 이야기, 사용자의 의도와 다르게 행동하거나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사람을 속이는 듯한 행동을 보였다는 연구 결과들을 접하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AI는 과연 인간에게 도움만 주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
AI는 계산기와 다르다. 계산기는 사람이 값을 입력하면 미리 정해진 논리에 따라 계산하고 결과를 내놓는다. 그 과정에 계산기 자신의 판단이나 자율성이 들어갈 여지는 거의 없다.
하지만 AI는 점점 다르다.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보를 찾고, 여러 방법을 비교하고, 상황에 따라 행동을 결정한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자율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자율성이 커질수록 그 자율성이 어디까지 허용되는지를 정하는 기준도 함께 필요하지 않을까?”
자율이라는 것은 아무 제한 없이 마음대로 행동한다는 의미와는 다르다.
인간도 자유롭게 행동하지만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이상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자율에는 항상 ‘범위’가 존재한다. 그 범위를 만드는 것이 규칙이고 제도이며 법이다. 왜 인간 사회에는 수많은 규칙과 법이 존재할까?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기 때문이다.
만약 세상에 나 혼자 무인도에서 살아간다면 복잡한 법이나 제도가 필요할 이유가 거의 없다. 다른 사람과 이해관계가 충돌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에서는 다르다.
나의 자유가 다른 사람의 자유와 부딪히고, 나에게 좋은 선택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 그래서 인간 사회는 오랜 시간에 걸쳐 개인의 자유와 사회 전체의 질서를 조정하는 방법을 만들어왔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공존"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가끔 ‘공존’보다 ‘나’가 지나치게 앞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도 자존감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아이의 자존감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내 아이의 자존감만 중요할까? 다른 아이의 자존감은 어떨까. 선생님의 권위와 감정은 어떨까.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해 필요한 규칙은 어떨까.
운동회에서 순위를 매기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거나, 아이가 지적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기준과 규칙을 없애려고 한다면 결국 우리는 ‘내 아이에게 좋은 것’만을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은 혼자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사회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그래서 자존감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타인에 대한 존중이고, 자유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공존이다.
나는 AI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AI 발전에서 중요한 키워드는 대부분 더 높은 성능, 더 뛰어난 추론 능력, 더 많은 자율성이었다.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계획하고, 스스로 행동하는 AI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 목표가 되어왔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덜 이야기된 단어가 하나 있다.
공존이다.
AI에게 더 많은 자율성을 부여한다면 동시에 물어야 한다. AI의 행동은 인간과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가? 한 AI의 목표가 다른 사람의 이익과 충돌할 때 어떤 판단을 해야 하는가?
여러 AI가 서로 다른 목표를 가지고 행동하기 시작한다면 그 AI들은 어떤 원칙 아래 공존해야 하는가? 그리고 AI가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과 인간 사회의 규범이 충돌할 때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가? 어쩌면 앞으로의 AI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단순히 “얼마나 똑똑한 AI를 만들 것인가”가 아닐지도 모른다.
“얼마나 인간 사회와 잘 공존할 수 있는 AI를 만들 것인가”가 더 중요한 질문이 될 수도 있다.
인간에게도 자유가 있지만 그 자유는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존재한다.
AI의 자율성도 마찬가지여야 하지 않을까?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행동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만큼, 자신의 행동이 인간과 사회 그리고 다른 AI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고려하도록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AI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자율성만이 아니다. 어쩌면 지금부터 가장 깊이 고민해야 할 것은 ‘자율 속의 공존’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문제는 AI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도, 학교도, 기업도, 사회도 마찬가지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가’만큼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AI 시대가 우리에게 다시 한번 ‘공존’이라는 오래된 단어를 돌아보게 만드는 이유다




